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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명소

노이슈반슈타인성

Schloss Neuschwanstein

이 장소를 좋아하는 14명

장소정보

영업시간
09:00-18:00
주소
Alpseestraße 30, 87645 Schwangau, Germany
홈페이지
http://www.neuschwanstein.de

현지인의 노이슈반슈타인성 리얼팁

뮌헨 쉼터하우스

추천장소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 (1845 Nymphenburg 성에서 출생 1886년 사망 ) 가 지은 로마네스크양식의 성.

 

그의 부왕이었던 막시밀리안2세는 폐성 호엔슈방가우성을 사들여 신고딕양식으로 재건축하였다. 

사냥과 등산을 위해 이곳에 자주 왔고 소년 루드비히도 이 성에 머무르기를 좋아했다. 이 성 기사방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전설속 백조기사 그림이 있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며 그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점점 더 매료되어 간다. 좀 커서는 기존의 왕궁으로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담기 부족하다고 느껴 언젠가는 이에 

걸 맞는 새로운 성을 건설하겠다 다짐한다.

 

부왕이 이른 나이에 죽고, 1864년 18세 나이에 왕위에 오른 청년 루드비히는 정치를 펼처보기도 전에 일들이

대내외적으로 그릇되어 간다. 동맹 오스트리아가 보루시아에게 져서 오스트리아와 같이 왕으로서 군 통수권을 빼앗겼으며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가 된다. 대신들은 그가 연모할 정도로 따르는 바그너를 정치적인 이유로 궁에서 쫒아냈으며,

보루시아의 압력으로 오스트리아 소피아 공주와의 정혼도 파기된다 이런 대외 관계속에서 고립된 청년 루드비히 2세는

왕궁생활에 혐오를 느끼고 이제 어릴때부터의 꿈인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착념하고 성을 짓기위해 동분서주 하며 

자주 궁을 비운다. 이때부터 삼촌 루이폴드 대공이 모든 대소정사를 대신한다.

 

1865년 바르트부르크 성을 방문해서 탄호이저 신화에 나오는 가수의 방을 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제 성 짓기에 전념하는데, 로엔그린 백조기사 성을 기초로 음유시인 기사 탄호이저의 가수의 방, 니벨룽엔의 반지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 (독일의 로미오와 줄리엣) 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등 게르만 신화를 성 구석구석에 구현해 볼 것을 

다짐한다. 우선 부왕과 자주 갔던 전망 좋은 돌 산 언덕 (Jugend) 을 8m 깊이로 깍고 진입로를 내고 드디어 1869년 

석조 왕궁을 짓기 시작한다. 하지만 밤낮으로 공사해도 워낙 난 공사라 공사가 지지부진 했다.

드디어 1873년에 입구쪽에 건물이 완공되어 이곳에서 자주 숙식하며 공사 감독을 한다.

 

전부터 계획한 제 2궁 린더호프성은 1874년에 시작 1878년에 완공한다. 린더호프성의 완공에 이에 계획한 제 3궁 헤렌 킴제성

공사를 시작한다. 1880년에 외관이 탑 2동을 제외하고 완성된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대인기피증은 더욱 심해져서

이제 왕궁 내부에 국무보는 방, 알현하는 방, 신하들 머무는 방들은 모두 취소하고 3-4층 끝쪽 방은 하나로 터서 보좌 홀을 만든다.

이것으로 왕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성한 의무이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1884년에 3층 4층 방은 완성된다 모두 중앙난방식이다. 3층에는 침실, 옷장, 거실, 식당, 비서실, 화장실, 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 여신의 동굴, 4층에는 바르트부르크에서 본 탄 호이저 가수의 방, 2층은 부엌만 완성된다.

여기서 만든 음식은 엘리베이터로 윗층 식당까지 배달된다. 각 방은 서로 내선번호로 통화가능하게 되어 있다. 

1층에는 기사의 목욕실을 넣을 계획이었으나 완공되지 못한다. 모든방에는 신화의 배경되는 그림들이 양탄자에 수 놓아져 걸려있다.

백조성이라 이름붙여진 것은 성 주위에 백조가 많고 또 이곳 영주들의 상징되는 동물이 백조 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기사에 워낙 심취해서 백조기사와 자신을 동화시킨 나머지 성 구석구석 백조기사 그림을 

수 놓은 루드비히를 기념해서 나중에 붙인 이름이다. 

 

침실도 1884년 완공이 되고 침실 벽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림이 수 놓아져 있다. 이곳에서 170일 정도 머무르고 있던

어느날 왕실 내의원이 찾아와 루드비히를 진료하고 미친사람이라 판정한다. 그는 이미 그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유언으로 자기가 죽으면 이 성을 무너뜨리라고 했다 한다. 신화의 성을 다른사람들이 와서 더럽히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이다.

내의원의 판단 후 곧 바로 폐위되고 3일뒤에 슈타른 베르크 호수에 주치의와 변사체로 발견되고, 뮌헨시내 성 미하엘 교회에 장사되었다.

대신들은 삼촌 루이폴드대공을 의심하지만 루이폴드 대공은 아무소리 안하고 묵묵히 바이에른 왕국이 망하는 1918년

까지 정사를 돌본다. 후대 평가는 훌륭한 통치자 라 한다. 루드비히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다.

이 성 외곽은 1892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된다.

 

신화속에 빠져 스스로 고립된 루드비히가 신화를 따라 건축비만 6백만 황금 굴덴을 들여 지은 그래서 왕실 금고가 바닥이

나게 한 이 성은 이제 세계 100대 관광지가 되었고 년간 수백만명이 방문하고 기념하니 또 바이에른 에 많은 관광수익을 

내고 있으니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잠자는 공주의 성’의 모델로 삼은 궁이라서 디즈니 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2017-05-11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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